일본 드라마는 주로 감성적인 것을 즐겨 보는 편이다. 당연히 제목부터 자극적인 <일본 침몰>은 관심 분야가 아니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1회를 보다가 정주행을 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설명하면, 침몰을 앞둔 일본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자극적인 장면은 전혀 없다. 영화 해운대처럼 물이 밀려들어와 죽어가며 소리치는 사람이 등장하는 '재난영화'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꽤 잘 만든 드라마라고 생각된다.
그동안 일본에서는 '일본침몰'을 주제로 한 영화가 많이 나왔다. 1975년에 텔레비전에서 방송되었고 1980년에는 라디오 드라마도 있었으며 넷플릭스에서 만든 <일본 침몰 2022>라는 애니메이션도 있다. 이렇게 많은 일본 침몰을 주제로 한 콘텐츠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섬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불안과 절박함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같은 섬나라이면서도 영국과는 전혀 다른 이 분위기는, 일본이 워낙 지진이 많이 발생하는 곳에 위치한 때문일 것이다.
주인공 아마미는 환경부 소속의 공무원이다. 별거중인 아내와 어린 딸이 있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캐릭터다. 그는 환경보호를 위해 해저의 무공해 에너지 개발사업인 COMS를 추진해 왔고 완성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괴짜 과학자로 불리는 타도코로 박사가 COMS 때문에 관동지방이 침몰할 수 있다며 연일 언론을 통해 떠들고 있었다. 총리를 비롯한 아마미는 당연히 가짜 뉴스라고 생각하고 상대하지 않지만 아마미는 만에 하나라도 국민에게 문제가 생길 경우를 대비해서 해저조사를 해보자고 제안한다. 해저조사에서 타도코로 박사가 관동지방 침몰 가능성을 발견하지만 COMS를 같이 추진중인 세라 박사는 부인한다. 아마미는 이 과정에서 타도코로 박사의 연구가 맞다고 확신하게 되고 총리를 설득해 국민들에게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위 관료들은 우왕좌왕하고 총리와 부총리의 의견이 갈리는 가운데 결국 세라 박사가 데이터를 조작했다는 것이 밝혀졌고, 어느 날 갑자기 관동 지방의 일부가 물에 잠기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이 드라마에는 많은 사람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유약하지만 국민을 생각하는 총리, 파벌을 이끌고 총리보다 큰 권력을 가졌으며 경제의 중요성을 가장 우선시하는 부총리, 재벌의 아들이지만 공무원으로 일하는 아마미의 친구 토키와, 투철한 직업정신을 가진 여기자 시이나, 그리고 그들의 가족 등이 주요 인물이다. 배경도 매우 한정적이다. 침몰된 도쿄의 일부 지역은 CG처럼 배경으로 처리될 뿐이고 대부분이 회의실, 거리, 집안 등의 풍경뿐이다. 그럼에도 은근히 몰입하게 되는 것은 배우들의 연기력과 대사의 힘이 아닐까 싶다.
등장인물들은 처음에는 각자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 부총리는 관동지방 침몰이 허구라고 주장하며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약간의 편법도 일삼는다. 친구 토키와는 경제를 걱정하는 아버지와 부총리의 유혹에 흔들린다. 시이나 기자도 자신의 명예를 위해 국가비밀정보를 기사로 써 버린다. 그런데 이들은 서서히 변해간다. 일본 침몰이라는 상상할 수 없는 거대한 무게감 앞에 힘을 합해 하나가 된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이 드라마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할 주제가 '침몰'일 것이다. 물론 얼마 전 경주 지진 등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가 생겨나고는 있지만 일본은 열도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끔찍한 공포감과 평생 함께해야 한다니, 새삼 삶의 터전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끝으로, 드라마의 부제가 '희망의 사람'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극도의 위기 상황에서 희망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재해에 대처하는 자세, 공직자의 태도와 의사결정 과정 등 생각거리가 많은 드라마였다. 결국 사람만이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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